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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짜리 아파트를 사고 싶다.

업무지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역까지 도보 몇 분인지, 대단지인지, 학교가 가까운지, 주변에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는지, 상권은 잘 갖춰져 있는지. 하다못해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의 경사도까지 보고 싶다.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고 갈 수 있을 정도인지까지.

가능하다면 이런 조건을 하나씩 체크박스로 만들어서 전부 체크한 다음, “좋아, 이 정도면 사도 되겠다”라고 결정하고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완벽한 아파트는 없을 것이다. 역이 가까우면 오래된 아파트일 수 있고, 신축 대단지라면 역에서 멀 수 있다. 학군이 좋으면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괜찮으면 출퇴근이 불편하다. 결국 중요한 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아파트가 좋은가’보다 ‘나는 어떤 집을 70~80점에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고 있다.

최근 부동산 영상을 하나 보다가 ‘급지’라는 말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수요가 있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결국 본질은 장기적으로 가격이 우상향하는 집에는 그 집을 계속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고, 그 수요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부동산을 보는 핵심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느 동네를 보더라도 단순히 “여기가 좋은 동네인가?”라고 묻기보다 조금 다르게 질문해보려고 한다.

이 아파트는 왜 비쌀까?

같은 지역에서도 유독 비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역이 가까워서인지, 학군 때문인지, 대단지라서 인지, 신축이라서인지. 그런데 여기서 끝내지 않고 같은 가격대의 다른 아파트는 어디에 있는지도 비교해보고 싶다. 비슷한 가격을 내고도 굳이 이곳을 선택할 이유가 있는지를 봐야 그 아파트의 진짜 경쟁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지역에서 역까지 5분 차이가 실제 가격을 얼마나 바꿔놓는지도 궁금하다. 도보 5분 차이가 3천만원인지, 1억 원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별 차이가 없는지 직접 비교해 보면 그 지역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조금 보일 것 같다.

또 이 동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주변 업무지구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인지, 자녀 교육 때문에 들어오는 가구인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넘어오는 수요인지. 주변에 사립학교나 좋은 학교가 있는지,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는지, 새로운 업무지구가 가까운지, 교통이 좋아서 다른 지역에서도 들어오려는 수요가 있는지. 결국 이 가격을 만들어내고 있는 수요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 수요가 5년 뒤에도 존재할지도 생각해봐야겠다. 지금 학원가가 잘 되어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커질까? 새로운 업무지구가 생기면서 수요가 이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주변에 더 좋은 신축 아파트가 대규모로 공급되면 지금의 가격 경쟁력은 유지될까?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내가 살고 싶은 집과 사람들이 사고 싶은 집을 조금 분리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동네라도 다른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곳이 계속해서 높은 수요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고점’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원래부터 수요가 강한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는 것과, 평소에는 수요가 많지 않아 가격이 잘 움직이지 않던 아파트까지 함께 오르는 것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모든 아파트가 각자의 좋은 이유가 있어서 오르는 것인지, 아니면 시장 전체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가격이 함께 따라 올라가는 것인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만약 평소에는 수요가 많지 않았던 아파트까지 사람들이 앞다투어 사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가격이 펀더멘털보다 기대심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것만으로 고점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내가 시장을 바라볼 때 참고할 만한 하나의 신호는 될 것 같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100점짜리 아파트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이면서, 다른 사람도 사고 싶은 집.

그리고 그 집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조건에서는 확실하게 만족하는 집을 찾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는 나의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은 아직 세 가지 정도다. 

역에서 도보 10분 이내이거나, 버스를 타더라도 배차가 짧고 이동이 편할 것. 동네의 주거환경이 어느 정도 균질해서 매일 집을 나서서 마주치는 사람과 거리의 분위기까지 내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그리고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불편하거나 음침하지 않을 것. 밤에도 혼자 걸어갈 수 있고,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생활하기 편한 길이면 좋겠다.

물론 이것도 앞으로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건 조건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지를 아는 것일 테니까.

100점짜리 집을 기다리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보다, “이 세 가지는 포기하지 않겠다. 나머지는 70~80점이면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임장을 다닐 때는 집의 가격만 보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보다 그 가격이 만들어진 이유를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아파트는 왜 비쌀까. 같은 가격이면 어디를 살 수 있을까. 이 가격을 만들어내는 수요는 누구일까. 그리고 5년 뒤에도 누군가 이 집을 사고 싶어 할까.

아직 내가 어떤 집을 사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집을 볼 때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비교하고,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