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제 유가가 또 9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솔직히 7월엔 안정되는 듯했습니다. 전쟁 전 수준으로 이제 서서히 회귀되겠구나라는 인식이 만연하게 퍼져있었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8월 들어 다시 스멀스멀 오르며 눌러앉더니 최근엔 아예 90달러를 뚫고 그 위에서 버티고 있더라고요. 사실 올해 들어 가격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변수이기 때문에, 눈여겨  수밖에 없지만, 사실 이제는 전 세계가 이 상황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시장은 늘 변수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 흐름에 대해서도 다시 확인하며 짚어볼 필요가 있었어요. 

이란 공습에 Brent oil 이틀 새 7% 급등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를 공습했다는 소식이 뜨자, 브렌트유가 이틀 만에 7% 넘게 튀어 올랐습니다. 9월 1일 기준 브렌트유는 94.65달러, WTI는 90.22달러로 마감했는데 둘 다 7월 하순 이후 최고 수준이에요. 이란이 "가만있지 않겠다"고 예고까지 하면서, 호르무즈해협 통행 자체가 오래 막힐 수 있다는 우려까지 얹혔습니다.

유가는 빠르고 물가전가는 느리다 ㅡ 인플레 원인도 나라마다 제각각

유가는 이런 위협이 뜨면 하루 만에도 확 튀는데, 그게 소비자 물가로 넘어가는 속도는 훨씬 느립니다. 실제로 공급 자체가 부족해지는 상황이면 시장 가격도 따라 오르지만, 공급 영향이 크지 않거나 수요가 이미 약해진 상황이면 가격이 그렇게까지 요동치기는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나라마다 지금 물가를 밀어 올리는 원인 자체가 다릅니다. 어떤 나라는 반도체·AI 호재로 성장률이 뜨거워지면서 그 수요가 인플레이션을 주도하고 있고(수요 견인형), 유럽은 정반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에너지 수급이 빠듯한 상태에서 호르무즈 압박까지 연달아 받으며 에너지 가격이 구조적으로 폭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공급 충격형). 같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써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제 원재료, 물류비가 또 오른다

유가가 오르면 납사, 에틸렌 같은 미들 스트림 (middle-stream) 그리고 이어서 다운 스트림 (down-stream) 가격을 밀어올립니다. 최근 다뤘던 "원재료 인상분이랑 판가 사이에 얼마나 갭이 있나" 계산도 사실 다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데요. 게다가 호르무즈해협이 계속 막히면 해상 운임이랑 보험료까지 같이 뛸 수 있기 때문에, 원가가 원재료와 물류비 양쪽에서 한꺼번에 치고 들어올 판입니다. 국제 유가가 90달러대에서 계속 버틴다면, 제조업은 모두 그 값을 판가에 올릴 수밖에 없는 흐름이 또 한 번 반복될 수 있는 어려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존 물가 3.3%, 미국 금리 인상 확률도 급등 

유로존 8월 물가상승률이 3.3%를 찍었는데, 2023년 9월(4.3%) 이후로 제일 높은 수치더라고요. 에너지 가격이 14.3%나 뛰면서 이 상승세를 6개월 넘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럽중앙은행도 가만있을 수 없어서, 10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25%에서 2.5%로 올릴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쪽도 비슷한 그림이었어요. 케빈 워시 의장의 매파 발언에 이란 공습까지 겹치니까, 이달 FOMC 인상 확률이 일주일 만에 39.6%에서 68.2%로 확 뛰었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한때 4.8%까지 치솟았고요.

물가 잡자니 성장 죽고, 성장 살리자니 물가 못 잡는 딜레마에 직면한 유럽

EU는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0.9%로 낮췄어요. 에너지값이 이렇게 뛰는데 각국이 보조금을 풀면, 국채를 더 찍어야 하고 그러면 장기 금리가 올라가서 ECB가 애써 잡으려는 긴축 효과가 상쇄 돼버립니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안 풀면 가계 소득이랑 기업 이익이 줄면서 경기가 더 식어버리고요. 물가 잡으려니 성장이 죽고, 성장 살리려니 물가가 안 잡히는, 딱 그 사이에 낀 모양새예요.

실무 입장에서 계속 지켜봐야 할 것

유가가 오르면 연쇄적으로 원재료, 운반비, 물가, 금리, 심지어 유럽 쪽 수요까지 한 줄로 다 엮여 영향이 있다는 걸 또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는 여러 거시적 변수와 미시적 변수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참 예측하기가 어렵기도 한 거 같습니다. 다만 이런 변수들이 곧 수요와 공급에 어떤 영향값을 주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장님이 더듬는 코끼리 보다야 좀 더 기민하게 경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희망이 되는 거 같아요. 수요가 선제되지 않은 공급 불안정은 사실 그 여파가 작을 수 있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공급 감소 자체가 미치는 영향도 분명 느릴 뿐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위기가 닥칠 때 반응하기보다 미리 알고 예측할 수 있는 실무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