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영업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가격을 올리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깎으려는 고객들과, 서로 물량을 확보하려는 경쟁사들 사이의 가격 경쟁 구도에 놓여 있으니까요. 미팅할 때 가장 지양해야 하는 게 사실 가격 프레임에 매이는 일입니다. "경쟁사 가격이 더 좋아서 쓴다"는 프레임에 한번 갇히면 정말 가격 얘기만 하게 되고, 가격이 높은 쪽을 파는 입장에서는 그 순간 무력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미팅 내내 가격 이외의 것을 얘기하려 하는데, 결국 본질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기분 좋을 때는 표면적인 얘기만 오가서 잘 안 나오다가도, 가격 인상을 논할 때 먼저 "우리가 인상을 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해 시장 상황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면, 오히려 더 직관적인 반응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 팀장님과 동행하며 느낀 것들을 잊지 않고 싶어 정리해 봅니다.
사실 공급 불안정성이 저변에 깔리면 가격이 오르지않을 거라고 믿는 곳들도 가격인상을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다 재고를 보충하기 시작하는데 나만 손 놓고 있다가 혹여 공장을 돌리는 데 문제가 생기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객들이 가격인상을 수용했던 과거에도 그럼 순순히 인상을 받아들였나 회고해 보면, 정작 인상을 밀어붙일 때 순순히 받아들이는 고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들 우선 상당히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보고, 가격이 올라 죽겠다고 우는소리를 하고, 평소 쓰지도 않던 고객이 견적을 물어와 "여기는 이렇게 해준다는데?" 하며 공급사끼리 경쟁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더가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조차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늘어난 물량 뒤에 다른 공급사와의 비교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팀장님은 늘 "가격 인상은 영업사원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십니다. 곱씹어보니, 인상을 하려면 내가 먼저 스스로 설득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야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논리로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연이은 유가 상승이 전 세계에 세금처럼 작용하면서, 정작 수요는 받쳐주지 않습니다. 열이면 열 "작년만 못하다"라고 하고, 애널리스트도 "인상 폭은 예전만 못할 것"이라 하는데,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설득당합니다. 칭찬 댓글 100개보다 악플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팀장님은 한 달 내내 "오를 수밖에 없다"라고 하시는데, 결국 본인이 믿는 만큼 밀어붙일 수 있다는 뜻이었나 싶습니다.
경쟁사 재고가 넘친다는 소식, "지금 올린다고?" 하는 코웃음을 들을 때마다 전략을 다시 계산합니다. 확신은 매일 조금씩 흔들리고, 그때마다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다만 팀장님은 "내가 올리겠다면 오르는 게 가격"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상위권 공급사가 인상을 선언하면 그 말이 발 달린 듯 퍼져 또 다른 흐름을 만든다고요. 그 경험이 쌓여 지금의 확신이 됐을 겁니다. 저는 아직 그 경험치가 없어, 지금은 믿고 따라가 볼 뿐입니다.
오늘 팀장님과 함께 간 미팅에서, 고객이 큰 물량을 제안하며 "좋은 가격"을 요구했는데, 실제 양산 적용 시점을 물으니 확인 후 알려주겠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고객이 뭔가 제안하면 "왜 지금 이걸 제안하지"라는 물음을 꼭 품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게 있습니다. 고객이 가격을 깎으려 할 때 보이는 태도는, 부동산에서 집값을 깎으려 흠을 찾는 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오히려 경쟁사와 비교하는 고객의 시선을 빌려볼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는 남부라 상해보다 납기가 길구나", "남부는 선적이 2주에 한 번이라 시기가 꼬이면 3주까지 늘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감각, 저희와 경쟁사의 견적 방식 차이, 고객이 그중 어떤 쪽을 더 선호하는지까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 고객을 앞으로 물량 기준으로 어떻게 전략적으로 대할지, 장기적으로 챙겨야 할 고객으로 남겨둘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가격 인상은 결국 거절당할 용기의 문제였습니다. 부정적인 여파가 돌아올까 봐 두려운 마음이 가장 큰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밀어붙인 게 아니라 논리와 인사이트를 갖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는 다들 거부하더라도 하루 이틀 지나 수용하는 고객이 하나둘 생깁니다. 그 과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막연히 넘을 수 없어 보였던 산이 생각보다 낮은 허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