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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은 언제까지 버틸까? 

 

9월 1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East-West) 파이프라인이 드론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이 파이프라인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 차질을 피하기 위한 주요 대체 경로로 하루 약 400만~500만 배럴의 원유를 운송해 왔다. 당시 공격 주체는 이라크에서 발사된 드론으로 지목됐으며, 동시에 후티 반군의 홍해·바브엘만데브 장악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었다.

해외영업을 하다 보니 결국 아래 질문이 생긴다 

“공급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전쟁이 길어지고 공급 차질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가격과 실물시장의 반응이 생각보다 더딘 순간이 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1) 시장이 전쟁에 내성이 생긴것인가?
2) 실제 공급까지 타격이 미친 건 아닌가? (심리적 불안에 그친 것인가)    
3) 실제 재고가 아직 충분한 것일까?  
4) 아니면 단순히 수요가 약하기 때문에 충격이 흡수되고 있는 것일까?

결국 재고가 버텨주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실제로 줄어든 공급능력을 재고와 비축유로 더 이상 보완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지금까지 누적된 공급 차질은 훨씬 빠른 속도로 시장에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비축유는 도대체 언제 바닥나는 것일까?
그 시점이 올해 4분기 일지, 내년 1분기 일지 미리 알 수는 없을까?

“아무도 모른다”는 답변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정유시설과 물류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반복된다면 공급 차질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무자로서 봐야 할 것은 정확한 고갈 날짜가 아니라 고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석유재고’가 도대체 뭘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석유재고’는 하나의 종류가 아니다. 먼저 누가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국가 비축유와 민간기업 재고로 나눌 수 있다. 국가 비축유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보유하는 재고이고, 민간기업 재고는 정유사·수입업체 등이 보유하는 재고다. 민간 재고에는 정부가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한 의무재고와 기업이 영업 과정에서 보유하는 상업재고가 포함된다.

 

중국도 재고가 부족하다고?

예상과 달랐던 중국

가장 의외였던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정유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과거 글로벌 석유제품 시장이 부족할 때 상당한 수출 물량을 제공해 왔다.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함께 글로벌 석유시장의 중요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데이터는 예상과 달랐다.
중국의 상업용 휘발유 재고는 2011년 이후 최저, 디젤 재고는 2015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말하는 재고는 중국의 국가 전략비축유가 아니다. 정유사와 시장에 유통되는 상업용 정제 석유제품 재고, 즉 휘발유와 디젤·가스오일 재고를 의미한다. Kpler에 따르면 중국의 상업용 디젤·가스오일 재고는 전쟁 이전 수준보다 약 2,000만 배럴, 휘발유 재고는 약 900만 배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수출까지 줄였다


중국은 10월 정유제품 수출을 제한했다. 국내 디젤과 휘발유 재고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로 물량을 내보내기보다 자국 공급을 우선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공급을 늘려줄 수 있는 완충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재고부터 채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직 수출 제한을 유지할지 여부는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러시아 정유시설과 중국 재고가 연결될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중국 재고 감소를 러시아 정유시설 피해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중국의 국내 수요와 정유사 가동률, 수출정책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다만 두 현상은 글로벌 정제제품 시장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러시아는 디젤 공급자였다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의 정유 처리와 디젤 생산·수출 여력이 감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디젤 시장의 공급 제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조적으로 보면,

러시아 정유시설 피해
↓
글로벌 디젤 공급 감소
↓
중국 등 다른 공급자의 역할 중요성 확대
↓
그런데 중국 역시 국내 재고 부족으로 수출 제한
↓
글로벌 정제제품 시장의 완충력 약화

로 연결된다.

왜 하필 디젤일까?

경제가 멈추지 않는 한 필요한 연료

디젤은 승용차뿐 아니라 트럭과 물류, 건설장비, 농기계, 산업용 장비, 발전기, 철도 등 경제활동에 필요한 곳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경기침체가 오면 물류·건설·산업활동 감소로 디젤 수요도 줄어든다.

하지만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단기간에 사용량을 크게 줄이기 어려운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쉽게 줄지 않는다. 결국 디젤 시장에서는 공급 감소 + 재고 감소 + 가격 상승 + 단기 수요 조정의 어려움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가격 상승만으로 수요를 충분히 줄여 시장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원유는 돌아오는데 디젤은?

실제로 현재 중동산 원유 수출은 상당 부분 회복됐지만, 정제 석유제품의 수출은 회복 속도가 훨씬 느리다.

9월 걸프 지역의 원유·콘덴세이트 (천연가스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액체 탄화수소) 수출은 전쟁 이전의 약 91%까지 회복된 반면, 정제제품 수출은 약 60% 수준에 머물렀다는 분석도 나왔다. 원유는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디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왜 비축 디젤을 꺼내야 할까?

또 하나의 중요한 신호는 유럽이다.

미국은 프랑스와 독일에 긴급 비축유 가운데 디젤 재고를 시장에 방출하도록 압박했다.
이는 이번 문제가 단순히 원유 가격이 오른 문제가 아니라 정제제품의 실제 공급 부족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G7도 결국 비축분을 꺼냈다


10월 2일 G7 정상들은 IEA와 함께 총 1억 배럴의 원유와 디젤을 긴급 비축분에서 방출하기로 했다. 특히 디젤 물량의 상당 부분은 초기 20일 동안 집중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비축유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민간 공급만으로 단기적인 정제제품 부족을 충분히 흡수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비축분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IEA의 3.25억 배럴은 얼마나 큰 숫자일까?

IEA는 어떤 기구인가? IEA는 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다. 1974년 석유위기 이후 설립된 국제기구로, 회원국의 에너지 안보와 석유 공급 차질에 대한 공동 대응을 담당한다. IEA 회원국은 원칙적으로 순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의 석유재고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90일은 전 세계 석유소비 90일분이 아니다. 각 국가의 순수입량을 기준으로 한 90일분이다.

4억 배럴 중 3.25억 배럴이 나왔다

올해 3월 IEA 회원국들은 중동발 공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4억 배럴의 긴급 석유재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동 방출이었다. 그리고 10월 초 현재 약 3.25억 배럴이 이미 방출됐다. 즉 당초 계획했던 4억 배럴 가운데 80% 이상이 이미 시장에 투입된 것이다.

그렇다고 비축유가 7,500만 배럴만 남은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3.25억 배럴은 전 세계 비축유의 잔량이 아니다. 3월에 결정한 긴급 방출 계획에서 지금까지 시장에 공급된 물량이다. 따라서 단순히 4억-3.25억=7,500만 배럴을 계산해서 “세계 비축유가 7,500만 배럴 남았다”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규모의 완충장치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갈 시점을 알 수 있을까? 정확한 날짜는 어렵다

내가 처음 궁금했던 “비축유가 언제 바닥나는가?”라는 질문에는 정확한 날짜로 답하기 어렵다. 국가별 비축유와 민간 재고가 다르고, 원유와 정제제품의 재고도 다르며, 국가별 방출 정책도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급 부족 규모 자체가 계속 변한다.

하지만 ‘고갈의 신호’는 볼 수 있다

정확한 날짜 대신 다음과 같은 신호를 추적할 수 있다.

① 중국의 상업용 디젤·휘발유 재고가 낮아지고 수출이 제한되는가

② 러시아 정유시설 피해로 디젤 생산·수출 여력이 계속 감소하는가

③ 중동의 원유 수출은 회복되는데 정제제품 공급은 따라오지 못하는가

④ 유럽이 비축 디젤 추가 방출을 얼마나 빠르게 결정하는가

⑤ 디젤 가격과 정제마진이 원유보다 계속 강하게 움직이는가

⑥ IEA 등 주요 국가·기관의 비축유 방출 속도가 더뎌지는가

이 신호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재고의 절대량을 알지 못하더라도 글로벌 석유시장의 완충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결국 봐야 하는 것은 ‘잔량’이 아니다

이 신호들을 종합하면 지금 당장 “4분기에 비축유가 고갈된다”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 재고가 있으니 괜찮다”고만 보기에도 어렵다.

지금 시장에서 봐야 하는 것은 비축유의 절대적인 잔량이 아니라, 공급능력 회복 속도와 재고 감소 속도 중 어느 쪽이 더 빠른가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정유시설과 수송망의 피해가 누적되고, 중국의 수출까지 줄어든다면 재고는 계속해서 부족분을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진짜 위험한 순간은 비축유가 ‘0’이 되는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급능력이 정상화되기 전에 시장이 더 이상 재고를 줄여가며 부족분을 메울 수 없게 되는 순간.

해외영업 실무자로서 내가 앞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도 결국 그 시점이다.

“비축유가 언제 바닥나는가?”가 아니라,
“공급이 정상화되기 전에 시장의 완충력이 언제 한계에 도달하는가?”

그 시점을 보여주는 신호에 조금 더 기민하게 반응하고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