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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래처에 원자재 가격 상승 그래프를 첨부해서 지금 시장 상황을 미리 알렸습니다. 구매 담당자들이 여러 원재료를 함께 담당하고 있는 만큼, 미리 시장 반응을 살필 수 있도록 귀띔해 드린 건데요. 아직 시장 전체에 뚜렷한 가격 인상 기조가 자리 잡기 전이니, 지금 협의할 수 있는 물량은 미리 정해서 대비하는 전략도 덧붙여 제안했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듯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 노티는 아니었는데, 메일을 보내고 나서 문득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해 보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영업 초반의 저는 고객의 말을 의심해 볼 생각 자체를 못 했습니다. 늘 고객이 던진 말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경쟁사 가격이 낮다"라고 하면, 저는 곧바로 "우리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어떤 강점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 "가격 이외에 고객이 원하는 건 뭘까"부터 고민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이건 "경쟁사 가격이 낮다"는 전제를 이미 사실로 받아들인 다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전제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요. "경쟁사 가격이 낮다"는 말을 들으면 먼저 되묻습니다. 어떤 경쟁사의, 어떤 그레이드 얘기인지. 낮다면 정확히 얼마나 낮은지. 그게 실제로 사실인지. 그 거래처의 구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 습관을 최근에 직접 적용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고객들이 "요즘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인상만 짖게 남아있는 것 같아, 정말 저희만 이득을 보고 있는 건지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원재료를 대략 7대 3 비율로 가중평균해서 전쟁 전 대비 얼마나 올랐는지 계산하니 300 안팎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는 원재료 인상분을 전가한 수준이라는 뜻이라, 이걸 기준선 삼아 경쟁사 그레이드별 고시 가격을 하나씩 대조했습니다. 조달 경로 차이(수입 원료는 국제 지표, 내수 조달은 중국 내수 고시가)까지 반영해서 보니, 대부분의 경쟁사가 이 기준선에 한참 못 미치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여유 있어 보였던 한 곳도 다시 들여다보니, 전 그레이드가 여유로운 게 아니라 프리미엄 그레이드만 그랬고 저가형은 손익분기점 수준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멈췄으면 "경쟁사들은 다 여유가 없구나"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했을 텐데요. 하지만 이 논리는 경쟁사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마진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재료 인상분만 판가에 전가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회사 제품에는 안티덤핑 관세가 붙으니까요. 지금 시장의 가격 인상 논리가 대부분 원재료 인상분 반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경쟁사들이 마진을 조금씩 내어주는 선에서 대응하고 있을 뿐, 손익분기점까지 몰린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도 안티덤핑 관세만큼 저희가 불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정확히 얼마나 불리한지, 경쟁사들이 실제로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원재료 인상분을 판가에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그저 "많이 불리하겠지" 정도로 추상적으로 넘어갔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엔 숫자로 뜯어보며 체감되는 깊이가 달랐습니다.
이런 경험과 실험이 쌓이다 보니, 영업을 할 때 스스로 좀 더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는 시야가 생겼습니다. 고객이 "경쟁사가 단가를 낮췄다"고 말할 때, 예전엔 그 말에 그대로 휘둘렸다면 지금은 그게 블러핑인지 아닌지 가늠해 볼 저만의 기준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상대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득하고 있다는 걸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더 좋습니다"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사실과 증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서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증거를 만드는 제 나름의 계산법도 하나씩 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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