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몇 년 전, 회사가 미래 먹거리로 10년 가까이 투자해 온 신소재 사업의 중국 담당을 맡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 소재가 중국에서 중소형 메이커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던 시장이었고, 저희 회사는 원래 B2B 체제에 익숙한데 이 시장은 B2C에 가까운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몇 년째 삽질만 거듭했고, 원가 경쟁력조차 없어서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였습니다. 많이 팔아도 문제, 안 팔아도 문제, 손실만 계속 커지는 상황이었죠.

제일 힘들었던 건 사업 자체의 어려움보다, 그 어려움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어요. 기존 사업에 익숙한 임원분들 눈에는, 시장 규모도 주요 고객사도 스펙도 정보가 부족한 이 사업이 그냥 "준비가 안 된 사업"으로 보였습니다. 자꾸만 기존 잣대를 들이대셨고, 저는 그때마다 이 시장이 왜 다른지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어요. 회의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고, 비슷한 답을 반복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현지 대리점은 영업사원 한 명뿐이었고, 애초에 이 사업을 맡은 계기도 저희 다른 제품을 팔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였습니다. 함께 출장을 가도 소모적인 미팅만 반복됐고, 저조차 우리 제품의 강점을 뾰족하게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영업을 하는 게 제일 고역이었습니다. 고객사를 만나기 전에 미리 답을 준비해 가도, 정작 현장에서는 예상 못한 질문이 나와서 진땀을 빼는 날도 많았고요. 그때는 하루 일과가 끝나도 뭘 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이 사업이 별도 조직으로 분사되면서 유럽 쪽을 담당하시던 분이 전체를 맡게 되셨어요. 그분과 나눈 대화가 오래 남았습니다. 본인은 유럽에서 이렇게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내부적으로 왜 이 사업이 중국에서 먹히기 어려운지, 먹히려면 뭐가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보고하는 게 먼저였다고. 문제를 혼자 끌어안고 조용히 버티는 대신, 데이터를 만들어서 위로 올리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대리점 역량을 키우는 것도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다고 — 새 대리점을 투입하든, 기존 대리점에 인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든. 실제로 그분은 유럽에서 인원을 늘리게 만들었고, 완성차 업체에 직접 컨택까지 병행하며 대리점 하고 같이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위에 보고를 한다는 게, 결국 제가 이 사업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었고요. 물론 그분도 물성 문제, 연구소와의 협업 등 쉽지 않은 지점이 여전히 있다고 했지만요.

그 얘기를 듣고서야 돌아봤습니다. 개발이 안 되는 것도, 판매가 어려운 것도, 대리점이 무능해서 생기는 리스크도 — 오더 예측이 안 되고 가격 경쟁에만 매몰되던 것까지 — 전부 저 혼자 짊어지고 있었더라고요.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저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스스로 정해버린 셈이었습니다. 사업을 넘기고 나서야 다시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혼자 다 이고 지고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구조적으로 만드는 것들 — 정보 부족, 대리점 역량, 조직 지원 — 은 제가 아무리 애써도 혼자 힘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건 조직에 명확히 알리고, 같이 풀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는데, 그때 저는 될 것과 안 될 것을 가리지 않고 다 붙잡고 있었던 거죠. 지나고 보니, 그건 책임감이라기보다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가까웠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것과, 문제를 혼자 껴안는 것은 다른 일이었는데 그때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이걸 나 혼자 해결해야 하나, 조직에 알려야 하나"를 먼저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이 질문을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