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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업 업무를 하다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실적에 그대로 영향을 주는 순간이 자주 옵니다. 물류 지연으로 매일,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 실적 숫자가 바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담당 팀장님은 연차 중이셨고, 월말이 가까워지면서 예상 실적을 미리 보고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적 예측은 제가 아닌 다른 동료가 맡고 있었는데, 저번 주부터 이미 실적 변동이 시작된 상태였고, 팀 내 다른 지역 실적이 빠질 걸 대비해 중국 쪽 물량을 미리 늘려둔 상황까지 겹쳐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바뀌는 숫자를 정확히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한 주였습니다.

부재중이던 팀장님이 아침 일찍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항차별로 입항·출항 예정일을 나눠서 수량을 다시 정리해봅시다." 담당 선배님이 항차·수주번호·수량·입항예정일·출항예정일을 모두 반영한 표를 만들어 올리셨습니다. 항차마다 컨테이너 개수와 수량, 예정된 접안·출항 시각까지 하나하나 채워 넣은, 세부 디테일까지 꼼꼼히 담긴 작업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상당한 품이 들어간 정확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표를 받아보고 처음엔 저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면서 세 가지가 잘 안 보인다는 걸 느꼈습니다. 첫째, 이 많은 정보 속에서 지금 우리 전체 실적을 결국 얼마로 봐야 하는지가 한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둘째, 입항 기준이 아니라 접안 기준으로 매출을 잡으면 실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빠져 있었습니다. 셋째, 저번 주에 다른 지역 실적이 빠질 걸 대비해 미리 추가해둔 물량 중 실제로 얼마가 빠졌는지가 표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항목은 다 채워져 있었지만, 그 정보가 전체 그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청받은 걸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팀장님께 지금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팀장님이 이 표를 보시고 다음 주 월요일 회의에서 결국 어떤 질문을 받으실지 역으로 그려봤습니다. 그래서 히스토리를 처음부터 다시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반차라 시간이 넉넉지 않아 완벽하게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개별 항차 단위로 흩어진 숫자를 나열하는 대신 팀 전체 실적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동돼왔는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눈에 보고드릴 수 있도록 정리해서 별도로 전달드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것도 발견했습니다. 저번 주에 있었던 한 동료의 부킹 누락 건이 당시엔 크게 부각되지 않아 팀 내에서 잊혀 있었던 겁니다. 히스토리를 되짚어보니 그 지역에서만 저번 주에 280톤이 빠져나간 상태였는데, 팀장님도 이번에 정리하면서야 그 규모를 처음 인지하셨습니다. 세부 항목을 채운 표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문제가, 시점을 되짚어 흐름으로 다시 엮으니 비로소 보였던 겁니다. 누구의 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놓치고 있던 숫자를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 일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같은 요청에도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선배님은 요청하신 항목 그대로를 세부까지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 집중하셨고, 저는 그 정보가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팀장님이 이걸로 결국 무엇을 판단하셔야 하는지에 집중했습니다. 돌아보면 어느 한쪽 접근만으로는 부족했을 겁니다. 세부 기록이 없었다면 애초에 되짚어볼 히스토리 자체가 없었을 거고, 흐름을 다시 엮는 시도가 없었다면 숨어있던 누락은 계속 묻혀 있었을 겁니다. 두 접근이 합쳐지면서 비로소 온전한 보고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협업이란 결국 서로 다른 강점이 겹치는 지점을 찾는 일이라는 걸, 이 경험으로 다시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자료를 정리할 때는, 요청받은 항목을 채우는 것과 그 요청의 배경에 있는 진짜 질문에 답하는 것을 함께 고려하려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미 꼼꼼히 채워둔 결과물이 있을 때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게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한 번 더 묻는 습관을 지키려 합니다. 이 습관은 이후에도 협상이나 보고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